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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0. 14:26 보았다/영화&애니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틸다 스윈튼의 공허한 눈빛과 꽤 처음 보는 어린 청년의 모습이 쌈박해서(...) 보게 된 영화다.


이 영화는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 이라는 2003년 출간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현재와 과거를 뒤섞어 보여주는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에바가 남편 프랭클린에게 차례대로 편지를 써내려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나니 원작인 소설이 너무나 읽고 싶다. 7월 18일에 번역되었다고 하던데. ㅎㅎ)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여행가 에바에게 아들 케빈이 생기면서 그녀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은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만 간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준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케빈은 에바가 평생 혼자 짊어져야 할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데…]


이 글 아래로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면 끊어주세요. (응??)



보통의 엄마라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애를 쓸텐데 영화 속 에바는 그저 멍 때리고만 있다.

공허한 듯한 에바. 케빈을 낳는 과정도 기분에 무척이나 공포스럽다. (그저 고함만 내지르는 장면임에도)



귀엽지만 사나워(ㅋㅋ) 보이는 아가&어린이 역에서 갑자기 훈남(내 취향임 ㅋ)으로 성장한 케빈.

그러나 그가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은 섬찟하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듯이 이글이글 타는 눈빛!!!)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내 말은 세세하고 친절하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우리가 할 일이라고는 숨죽이고 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 뿐이다.

왜 그녀의 집이 빨간 페인트로 도배되어 있는지, 마을 사람들은 왜 에바를 그런 소름끼치고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는지. 마을 주민에게 뺨을 세게 얻어맞아서 누군가 걱정해주니 굳이 여러번을 괜찮다며 급하게 그 자리를 빠져나가는 건지.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내용이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데 그 충격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망연자실하게 되었다.

(사실 꼭 영화 후반부까지 가지 않더라도 대충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바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녀의 공허함과 두려움, 그리고 당황스러움 등등 그녀의 모든 느낌이 제대로 전해져왔다. 그래서 아들을 잘못 키운 것에 대한 비판을 받는 그녀가 안쓰러울 정도다.

얼핏보면 (개인적으로) 다니엘 헤니의 모습이 보이는 케빈역을 맡은 93년생 이즈라 밀러의 연기는 신인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그가 자신의 엄마를 쳐다보는 눈빛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다. 만약 내 자식이었다 해도 무섭고 소름끼쳐서 가까이 가기 싫을 정도의 눈빛이었다. 

이 둘의 팽팽한 줄다리기 덕분에 어쩌면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의 진행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직접적으로 보여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소름끼치고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킬 정도로 공포감을 조성한다.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또 좋았던 것은 이 영화의 음악이다.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흥겹게 흐르는 노래지만 그 노래의 가사가 영화와 맞아떨어지면서 그 속에 숨어있는 분위기나 느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케빈이 에바의 뱃속에 있을때부터 알고 있었던 건지 어떤건지는 모르지만, 그는 눈치채고 있었다. 엄마인 에바가 자신을 사랑해서 낳은게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존재가 그녀에게 있어 기쁘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성장해 가면서 그는, 에바에게 이유 모를 고통을 주기 시작한다.

에바가 원해서 케빈을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에 대한 책임은 피해갈 수 없었다. 에바는 엄마가 될 준비가 안되어 있었고 케빈을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 어수룩하고 잘 몰랐던 것 뿐이다. (케빈의 동생 실비아의 경우를 보자. 그녀의 경우는 에바가 계획했고 사랑으로 돌봤으며 케빈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무지함과 무관심이 어마어마한 일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다. 바로 자신의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어 버린 것.

'엄마'라는 지위를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엄청난 모성애를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아주 크나큰 착각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런 모성애가 없다고 해서 아이를 방치하고 무관심으로 키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순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가뜩이나 요즘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결혼이라는 것이 더 무섭게 느껴진다.

부모는 자식을 선택할 수 없고 자식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만나게 된다. 자식으로, 그리고 부모로.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간에 살인자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일거다.


영화의 엔딩은 에바가 케빈을 꼬옥 껴안아주며 끝나게 되는데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에바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살인자' 라는 죄를 갖고 있는 내 자식을 그렇게 위로해주며 안아줄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아니다. 나는 아마 이미 훨씬 전에 자살을 택해서 죽어버렸을 거다. '살인자를 내가 만들어냈다' 라는 죄책감을 갖고 있더라도 더이상 그 끔찍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지옥을 더 일찍 가버렸을 거다.

그 누구도 내 아이를 낳을때 "이 아이가 살인자가 되면 어쩌지" 같은 끔찍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를 낳기 전에 그런 불안은 다들 조금씩 가지고 있을거다. "이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 이 아이가 제대로 된 아이가 아니면 어쩌지?" 같은.

어릴 적 유아기의 성장 과정이 정말 중요한 것임을- 우린 이 영화를 통해서 좀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얘기할 필요가 있다.

posted by Run&Run